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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보다 ‘기본기’, ‘숫자’ 아닌 ‘현장’에 초점…고장률 0.32%로 끌어내려

240기종·6단계 검수...‘불량률 제로’에 도전

충전요금 162원…택시기사 몰린 동락공원 V2G

전력 90% 되살린 대구 R&D센터의 혁신

BABA Act 긴장감, SKD·CKD로 정면돌파


▲ 채비 구미 HW 센터 원자재 창고 방향 모습. [사진=오철 기자]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채비(CHAEVI) 생산 공장. 정문을 들어서자 바닥에 민트색 선이 공장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지게차 구역과 작업자 통로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황경수 채비 생산본부 부장은 “이 선을 늘 칼같이 지키며 다니진 못해도, 이런 규칙과 시스템 하나하나가 사고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말처럼 채비의 현장은 거창한 구호보다 기본기가 먼저였다. ‘전기차 충전 업계 1호 상장사’라는 이정표를 세우게 된 채비의 가치는 숫자가 아닌 현장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시장의 기대 속에 오는 29일 코스닥 상장을 앞둔 채비의 저력, 그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구미 HW 센터를 시작으로 동락공원 V2G 실증단지, 대구 알파시티 R&D 센터까지 반나절에 걸쳐 채비의 현장 세 곳을 차례로 돌아봤다.



◆ 240개 기종·유연 생산…품질로 답하다


A동 1층 자재 창고는 이 공장의 첫 번째 관문이다. 입고된 부품은 즉시 수입 검사대에 오른다. 터치 패널은 24시간 연속 통전 테스트를 거쳐 불량을 걸러낸다. 합격품만이 ERP 시스템에 연동된 위치 관리 랙에 보관된다. 랙마다 구역 번호가 붙어 있고, 어느 자재가 몇 개 남았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선입ㆍ선출 원칙과 자재 추적성이 이 체계 위에서 동시에 굴러간다.


▲ 채비 직원이 조립 작업 표준서를 확인하며 급속충전기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2층 모듈 작업장에서는 컨트롤 보드·차단기·SMPS·퓨즈·전력량계 등 11종의 내판 조립이 한창이었다. 작업자가 자주 검사 체크 시트를 작성하면 조장이 크로스 체크하고, 뒤를 품질팀이 다시 순회 점검하는 품질·안전 3중 구조다.


“자주 검사 합격품만 다음 공정으로 넘어갑니다.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는 겁니다.” 황 부장의 말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일일공시 기준 채비의 충전기 평균 고장률은 0.32%로, 전체 사업자 평균(0.41%)을 크게 밑돈다. 이 숫자의 뿌리가 이 공정에 있었다.


기자가 자동화 계획을 묻자 황경수 부장은 “채비가 지금 보유한 기종만 240개가 넘는다”며 “CPO마다 요구 사양이 다르고 시장 변화가 심한 지금은 유연한 수작업이 더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이근욱 연구개발본부 이사는 “대신 부품 공용화를 최대한 끌어올려 품질을 안정시키고 있다”며 “200개 기종에서 핵심 모듈 하나가 공통으로 쓰이면 그 모듈만큼은 신뢰도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장이 안정화되고 단일 제품군으로 정리되면 자동화로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혔다.


▲ 황경수 채비 생산본부 부장이 NACS 커넥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실제로 채비는 CTO 주도로 2028년까지의 제품 로드맵(PRM)을 수립했다. 400kW부터 7kW까지 출력별로 라인업을 세분하고, 각 구간을 프리미엄(시그니처)과 보급형(스탠다드)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 이사는 “라인업이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공정 표준화도 따라올 것”이라고 전했다.


1층 생산동에는 출하를 기다리는 충전기 수백 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후부 관급 납품 물량이다. 한쪽에는 북미 수출용 제품들이 나무 상자에 담긴 채 대기 중이었다. 미국 리버사이드 시(Riverside)로 향할 충전기 40기다.


이근욱 이사는 “해외 수출 경험이 쌓이면서 선박 운송 중 충격과 습기를 막는 우드 박스 포장 방식이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20피트 컨테이너 한 대에 18기가 정확히 들어가도록 박스 치수를 설계했고 내부에는 제습제가 빼곡히 들어찬다.


충전 호환성과 안전을 검증하는 실차 테스트 구역에는 테슬라 모델3부터 구형 SM3 ZOE까지 13종의 전기차가 상시 대기한다.


황 부장은 “BYD도 한국 진출 전에 이 공장에 직접 와서 채비와 호환성 테스트를 했다”고 말했다. 체크 시트는 출하 후에도 3년간 보관돼 현장 장애 발생 시 공정별 역추적 근거로 쓰인다. 출하 전 마지막 단계에서는 전력량 검정 기관이 일정을 잡고 공장을 방문해 전력량계 검정을 진행한다.


▲ 채비 직원이 충전기 호환성과 안전을 검증하기 위해 실차 테스트를 하고 있다. [사진=오철 기자]



◆ ‘전기료 162원’에 택시 기사 줄 선다…동락공원 V2G의 실체


구미 공장을 나서 낙동강변 동락공원 제2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산업통상부와 구미시, 한전이 주도하고 채비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저전압 직류(LVDC) 마이크로그리드 실증단지다.


주차장 한편에 629kW 규모의 태양광 패널이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1.1MWh 규모의 ESS가 자리잡았다. ESS 중 300kWh는 사용 후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것이다.


▲ DC 그리드 LVDC 실증단지. [사진=오철 기자]


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는 750V 저전압 직류 전용망을 통해 18기의 충전기(V2G 10기·50kW급 급속 8기)로 공급된다. 남는 전력은 인근 국립구미과학관과 궁도장 등 부속 시설에도 활용된다. 사실상 독립된 재생에너지 마이크로그리드다. 전기 기본요금이 없다 보니 충전 단가가 kWh당 162원까지 내려갔다. 일반 급속 충전기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운영 개시 이후 가동률은 6%를 웃돌고 있다. 인근 전기 택시 기사들이 주요 이용자다. 천영은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한 달 전기료 30만원이 여기서 충전하면서 15만원으로 줄었다는 분들이 있다”며 “언젠가는 충전소 스스로 전기를 사고파는 에너지 플랫폼이 돼야 한다. 여기가 그 첫걸음”이라고 힘줘 말했다.


▲ 실증단지 주차장 방향 모습. 629kW 규모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사진=오철 기자]



◆ 테스트 전력 90%를 되살리고 케이블은 가볍게


마지막 행선지는 대구 알파시티의 채비 통합 R&D 센터다. 신도시의 성냥갑 같은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7층 건물, 연면적 6942㎡에 130~150명이 상주하는 이곳이 채비의 ‘두뇌’다.


▲ 전력회생장치. 테스트 전력의 90%를 계통으로 되돌려 재사용할 수 있다. [사진=오철 기자]


2층 테스트 랩에서는 500kW짜리 전력회생장치 3대가 낮게 울리며 돌고 있었다. 충전기 성능 테스트 시 발생하는 전력을 예전에는 저항 부하로 전부 열로 날려버렸다. 200kW 충전기 하나를 1시간 테스트하면 일반 가정의 한 달치 전기가 소모되는 셈이었다. 지금은 테스트 전력의 90%를 계통으로 되돌려 재사용한다. 이근욱 이사는 “MCS(Megawatt Charging System) 과제 등은 많은 전기 소비를 동반하는데 이 장치를 통해 전기 걱정 없이 시험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가 케이블 하나를 내밀었다. 기존 200kW급보다 52% 가벼운 수냉식 케이블이었다. 1m당 2.4kg이던 무게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허용 전류는 300A에서 350A로 오히려 늘었다. 대기업과의 협력으로 개발된 시제품이다. 이 이사는 “무거운 케이블 때문에 충전을 포기하는 이용자가 없어야 한다”며 “올 하반기 인증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 CES 2026 혁신상을 수상한 ‘CHAEVI MCS’ [사진=채비]


테슬라 ‘벽돌 현상’ 대응 사례도 들었다. 특정 충전기에 연결하면 차량이 먹통이 되는 이 이슈는 한때 업계를 뒤흔들었다. 이 이사는 “채비가 가장 많이 겪었고, 가장 먼저 해결했다”며 “지난 1월 환경공단에서 직접 연락이 와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봤을 정도”라고 전했다. 차량별 통신 프로토콜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밀 대응한 결과였다.



◆ BABA Act·북미 라인업… 시장보다 반 발 앞선 전략


공장 투어 중간 쉬는 시간, 이근욱 이사는 북미 전략을 꺼냈다. 올해 채비가 300kW 라인업을 새로 추가하는 배경이 흥미로웠다. 미국 NEVI 보조금 기준은 충전 면당 150kW다. 400kW 두 면과 300kW 두 면에 지급되는 보조금이 동일하다. 이 이사는 “400kW를 굳이 쓸 필요가 없는 CPO도 있다”며 “고객이 보조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BABA Act 대응도 진행 중이다. 현행 기준은 미국산 부품 비율 55%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2월 이를 최대 100%까지 높이는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 최종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황경수 부장은 “현재 조건으로도 요건은 충족 가능하고, 비율이 올라가더라도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KD(반조립 수출)로 레퍼런스를 먼저 쌓고 CKD(완전 현지 생산)로 전환하는 단계적 전략이다. 현지 인력 교육용 3D 작업 표준 영상도 이미 준비됐다.


▲ 대구 알파시티 R&D 센터 정면. [사진=오철 기자]


대구 알파시티 R&D 센터 7층 라운지에서 내려다본 풍경 속에 삼성 라이온즈 야구장이 보였다. 2016년 설립 이후 9년 만에 코스닥 상장을 앞둔 채비. 이날 반나절 취재에서 확인한 것은 수직 계열화의 실체였다. 구미 공장 바닥의 민트색 보행 동선에서 시작해, 동락공원의 폐배터리 ESS를 거쳐, 대구 R&D 센터의 전력 회생 장치로 이어지는 그 공급망. 거창한 슬로건보다 현장의 디테일이 고장률 0.32%라는 숫자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 채비는 20~21일 공모주 청약을 실시하고 오는 29일 상장할 예정이다.



 * 기사 원문 :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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