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 충전 분야 1위 사업 지위 굳건…수익성 개선 ‘기대’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은 구조적 변곡점에 있다. 캐즘 영향으로 대기업들은 당장 돈이 안 된다고 보고 잇따라 철수, 소수 사업자만 남은 국면이 됐다. 그런데 새로 들어선 정부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인프라 ‘숏티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채비 IPO가 주목되는 배경이다. 공모로 사업에 탄력을 붙일 경우 ‘승자 독식’을 노려볼 수 있다. 채비 펀더멘털을 다각도로 조명해 본다. |
전기차 충전 인프라 운영사업자(CPO) 채비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본격적인 공모에 앞서 회사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생존’이 떠오르고 있다. 전기자동차 수요 증감과 정책 변화 등 전기차 CPO 시장의 대격변기를 극복하고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 업계 1호 상장사 타이틀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다.
투자자들은 채비가 속한 급속 CPO 시장 특성에 주목한다. 후발주자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승자 독식 구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점으로 지목받는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으로 사업 확장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채비의 상장 청사진이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채비 충전소
◇ 전기차 CPO 등장…대기업 참전에 경쟁 심화
국내 전기차 충전시장은 완속과 급속 분야로 나뉜다. 먼저 완속은 교류(AC) 전원을 사용해 전기차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가정·상업용 충전소 등에서 활용한다. 출력 범위는 3~40킬로와트시(kW) 수준이다. 충전에는 약 8~30시간이 소요된다. 급속은 직류(DC) 전원을 사용한다. 40kW가 넘는 출력으로 배터리를 1시간 이내 80% 이상 충전한다.
전기자동차 보급 초기 국내에서는 환경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차량 판매 업체 등이 제공하는 충전기가 사용됐다. 이후 인프라 수요와 함께 충전소를 구축한 뒤 이용요금으로 수익을 내는 CPO가 등장했다. 2016년에 설립된 뒤 대기업에 전기차 충전기를 납품하던 채비도 시장 성장에 주목, 사업영토 확장을 꾀한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장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초창기 국내 CPO 시장은 완속 충전기 위주로 설치됐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았던 탓이다. 중소형 규모의 사업자가 난립했고 충전기 보유만으로도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을 노리는 ‘좀비 CPO’까지 판을 쳤다. 현재도 100여곳 이상이 경쟁하고 있으나 지배적 지위를 가진 업체를 찾기는 힘들다.
채비는 기술 난도가 높아 블루오션으로 꼽혔던 급속 영역에 집중했다. 2019년 시장 진입 이후 약 3년 만에 충전 1500면을 달성하며 점유율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으나 위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LG전자와 SK, 한화 등 대기업들의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자본력을 앞세워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 급속 충전면수 추이 (자료=증권신고서)
SK그룹의 SK일렉링크는 2022년 설립 첫해 매출 63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과 2024년은 각각 380억원, 51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이비차저(옛 애플망고)도 LG전자를 등에 업고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CPO 업계 안팎에서 채비를 포함한 중소형 업체의 입지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2024년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라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전기차 포비아(공포)로 일부 공동주택·다중이용시설에서 전기자동차의 지하주차를 제한하거나 충전시설 설치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기업 자회사는 버틸 체력이 있었지만,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여야 했다.
◇ 채비, 부지 선점·운영 능력으로 돌파…업계는 구조조정
시장 걱정과 다르게 채비는 다양한 변수 속에서도 꾸준하게 성장을 이어갔다. 일찌감치 타사와 차별화된 성장 전략을 수립한 까닭이었다. 전기차 충전소의 수익률은 가동률과 직결된다. 이에 많은 전기차 CPO들은 충전기 보유 대수를 늘리는 데 집중해왔다. 인프라를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가동률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채비의 생각은 달랐다. 단순하게 충전소 운영에 그치는 게 아닌 고객 락인(Lock-in)·가동률 상승 등 지속 성장 방법을 모색했다. 충전기 보급을 늘리면서도 교통량·충전 수요를 고려한 입지 선점에 주력했다. 알짜 부지 소유자와는 장기계약을 맺고 경쟁 업체 진입도 차단했다. 이는 곧 일반 충전소 대비 높은 가동률로 이어졌다.

▲ CPO 급속 가동률 비교 (자료=증권신고서)
공공부지 확보 노력도 주효했다. 공영주차장·주민센터 등은 전기차 충전 프리미엄 입지로 꼽힌다. 우수한 접근성으로 전국 충전소 대비 평균 가동률이 약 5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 임대비용이 민간보다 낮아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준다. 다만 선도 사업자와 장기 임대 계약을 맺는 특성상 신규 진입자의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채비는 설립 초창기부터 축적한 전기차 충전기 제조 기술과 설치·운영 능력, 전국 직영 애프터서비스(A/S) 지사를 통한 24시간 원격 모니터링 체계로 복합적인 기술·행정적 요건을 충족했다. 다양한 차량 모델과의 호환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진하며 고장률을 최소화했다.

▲ 2022~2025년 환경부 운영 충전기 고장율 비교 (자료=증권신고서)
운영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최근 4년(2022~2025년) 전기자동차 공공 급속 충전시설 운영현황에 따르면 채비는 4000면이 넘는 시설을 보유하면서도 고장률(0.32%)은 경쟁사인 SK시그넷(0.41%, 2556면), 롯데이브이시스(0.63%, 957면)보다 낮다. 반면 고장 발생 시 조치 기간은 2.90일로 가장 빨랐다.
채비는 이 같은 사업 역량을 앞세워 꾸준한 공공 부문 수주에 이어 2023년 서울시 공영주차장 민간투자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10곳 중 6곳의 사업권을 따내는 성과를 냈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 사업 시절부터 쌓아온 노하우와 위기관리 능력으로 경쟁사들과의 자본력 격차를 극복한 것이다.
◇ 살아남은 채비, 1위 굳히고 승자 독식 체제 다진다
팽창하던 급속 CPO 시장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정체)으로 지각 변동을 맞았다. 앞서 대규모 자본을 투입했던 대기업들은 실적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빠르게 철수했다. SK그룹은 지난해 SK일렉링크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LG전자는 약 350억원을 투입한 하이비차저를 청산했다.

▲ 채비 실적 (자료=증권신고서)
채비는 2022년 연결기준 536억원이었던 매출을 2024년 85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000억원(가결산)을 넘어섰다. 민간기준 급속 시장 점유율(5778면, 18.5%)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보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 내 2위 사업자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 약 5200면)보다 충전 면수가 많다.
시장 일각에서는 여전히 전기차 판매 둔화를 걸림돌로 꼽고 있다. 그런데 CPO 영역은 시장에 보급된(누적) 차량 대수에 따라 성장 여부가 판가름 나는 구조다. 현재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90만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 충전기 1대당 충전 차량 수(차충비)는 16.5대다. 여전히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 급속 CPO 충전 면수 점유율 (자료=증권신고서)
게다가 CPO 사업은 시스템을 구축하면 이후 투입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매출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다면 향후 이익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영업 레버리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한 차례 업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채비로서는 승자 독식 체제에 더해 부진한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빠르게 잡을 수 있다.
투자자들이 참고할만한 사례로는 쿠팡이 거론된다. 쿠팡 역시 대규모 손실을 감내하고 시장 영향력 확대에 집중했다. 한때 존폐위기에 놓였던 과거가 무색하게 지난해 6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냈다. 채비 역시 공모자금 1202억원 중 910억원을 시설투자에 사용해 급속 CPO 시장 최상위 사업 지위를 굳히겠다는 계획이다.
채비 관계자는 “공공 부문에서 쌓인 수주 실적은 민간 시장에서도 살아있는 신뢰 자산으로 작동하고 국가가 검증한 사업자라는 사실은 어떤 영업보다 강력한 설득이 된다”며 “검증된 운영 품질과 선제적 부지 선점, 압도적 공공 레퍼런스라는 이 세 축이 맞물린 진입장벽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시간 없이는 쌓을 수 없다”고 말했다.